‘생존 게임’ 벌이는 배터리 소부장… 30년 전문가 “캐즘 아닌 불황”
사업 영역 확대하고 원가 절감 ‘안간힘’
“지나고 보니 ‘캐즘(Chasm·일시적인 수요 부진)’이 아니라 ‘불황’이었습니다.”
지난 11~1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6’에 참여한 30년 경력의 배터리 전문가 피엔티 서정석 상무는 “전기차 수요 둔화가 장기화되면서 배터리 업계는 침체 국면에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덩치 큰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가 연간 수조원의 적자를 내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생태계를 구축한 국내 배터리 업계는 ‘생존 게임’에 돌입했다. 원가 절감에 나서는 한편 사업 영역을 넓히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불황 돌파구를 찾고 있다.
올해로 14회째를 맞은 국내 최대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 행사에 참여한 업체들은 기술력뿐 아니라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찾은 자구책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이번 행사에는 국내 배터리 3사를 포함해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해외 관계사 등 667개 기업이 참여했다.

삼성SDI에 배터리 장비를 납품하는 필에너지는 업황 부진에 따른 매출 감소에도 전략적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원통형 권취기 전문업체 도원위즈테크 보유 지분을 확대했고, 올해는 미국 전고체 배터리 업체 팩토리얼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다.
이형노 필에너지 부사장은 “그동안에는 핵심 고객사에 배터리 장비를 공급하는 단일 비즈니스에 집중했지만, 앞으로는 단순 설비 공급뿐 아니라 설비 엔지니어링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방침”이라며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필에너지는 턴키(일괄 공급) 수주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미국·유럽의 방산·해운 관련 배터리 업체에 대한 턴키 수주를 목표로 확장 영업에 나서고 있다.
이형노 부사장은 “전기차 업황이 당장 회복되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설비 엔지니어링으로 영역을 확대해 올해를 턴어라운드의 기점으로 잡겠다”며 “내부 효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조직도 정비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차전지 장비 업체 피엔티는 소재 분야로 영역 확장에 나섰다. 장비 시장이 냉각되자 새로운 매출원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피엔티는 소재 중 리튬인산철(LFP) 양극재와 배터리 셀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두 소재를 생산하는 공장을 경상북도 구미시에 완공했으며, 현재는 소재를 시생산하고 있다.
서정석 피엔티 상무는 “올해 상반기 인증을 마무리하고 하반기부터 본격 생산에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양극재는 고객사 대상 샘플 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배터리 셀은 국제 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 회사 측은 인증이 완료되면 실제 수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향후 태양전지 영역으로 진출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서 상무는 “배터리 외 신시장도 노리고 있다”며 “향후 차세대 태양광, 태양전지 분야 장비를 생각 중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장비 기업 하나기술은 장비 제품 다양화에 나섰다. 하나기술은 기존에는 배터리 공장을 지어 고객사에 납품하는 턴키 기업에 전공정 장비를 공급하는 것을 주요 사업으로 영위했는데, 업황 악화로 수주가 줄었다.
일감이 줄어들자 대응책으로 내놓은 것이 ‘HNX’다. HNX는 인공지능(AI)이 탑재된 적층 장비로, 배터리 제조 장비 등에 문제가 생기기 전 미리 이상 신호를 감지할 수 있도록 하는 장비다.
하나기술이 곧바로 장비 개발에 나선 것은 아니다. 하나기술은 전기차 불황에서 살아남고자 전고체 배터리용 황화물 소재 개발에 뛰어들었으나, 비용 때문에 개발에 난항을 겪었다. 결국 하나기술은 경쟁력 있는 분야인 장비 생산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소재 전문 기업인 나노실리칸첨단소재는 가격 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시도 중이다. 최근 배터리 소재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로 가격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박성규 나노실리칸첨단소재 사장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 2024년 1월부터 원료를 분쇄하지 않는 방식의 아이디어를 냈다”며 “지난해 7월부터 이 아이디어에 따른 공장을 짓고 있고 올해 3분기 정도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배터리 산업 회복의 핵심으로 전기차(EV) 수요 회복을 꼽았다. 최근 로봇 기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로보틱스가 배터리 산업의 새로운 시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만, 전기차에 비하면 로봇 관련 배터리 시장은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서 상무는 “제품 1대당 배터리 사용량을 고려하면 전기차 시장의 성장 없이는 업황 반등이 쉽지 않다. 전기차에 비하면 휴머노이드 등 로봇 시장은 새 발의 피”라며 “전기차 수요가 회복돼야 배터리 업황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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